역사적으로 영국과 프랑스는 견원지간이라 할 만큼 사이가 좋지 않았다.
노르망디는 프랑스 북서부에 있으면서 영국과 마주하고 있는 지방이며, 제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 승리의 전기를 마련한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펼쳐진 곳이다. 양국 간의 뿌리 깊은 반목과 대립의 역사는 바로 이 노르망디에서 시작된다.
발트해 연안에 살던, 일명 '바이킹’이라 불리던 노르만족은 9세기부터 유럽 해안 곳곳에 출몰하여 약탈을 일삼았다. 프랑스 해안을 침략한 노르만족이 점차 내륙까지 세력을 뻗자 프랑스의 샤를 3세는 노르만족의 수장 롤로에게 봉토를 내어 주고 충성 서약을 받는다. 프랑스의 영토에 세워진 노르망디 공국은 이후 본국에서 많은 사람들을 이주시켰고 프랑스의 언어, 관습, 종교 등을 받아들여 나라의 기틀을 다져 나갔다.
1066년, 노르망디 공국의 윌리엄 1세는 도버 해협을 건너가 앵글로색슨 왕조를 무너뜨리고 노르만 왕조를 세워 잉글랜드와 노르망디를 공동 통치하는 영국왕이 되었다. 노르망디는 영국의 노르만 왕조가 시작된 후부터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자국의 영토였던 노르망디를 빼앗긴 프랑스는 노르망디 탈환을 위해 전쟁을 치러야만 했다.
프랑스의 필리프 2세는 영국과의 싸움에서 노르망디를 재탈환 하면서 영국 왕 헨리 3세로부터 노르망디 영토에 대한 영국의 모든 권리를 공식적으로 포기한다는 파리 조약을 받아냈다. 이로써 노르망디는 완전히 프랑스의 영토가 되었다. 1328년, 프랑스의 샤를 4세가 후계자 없이 죽자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자신의 어머니가 프랑스 샤를 4세의 누이이므로 자신이 프랑스의 왕위를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양국은 심각한 대립 관계에 놓였는데, 노르망디를 두고 뺏고 뺏기는 다툼을 벌인 것은 노르망디 지역의 경제력 때문이었다.
당시 노르망디 북부의 플랑드르는 유럽 최대의 모직물 공업 지대로 영국의 최대 양모 공급지였고, 남서부의 가스코뉴는 유럽 최대의 포도주 생산지였다. 노르망디를 둘러싼 양국 간의 전쟁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길고 기나긴 백년 전쟁이 시작되었다.
프랑스를 전장으로 한 이 전쟁은 초반부터 영국이 우세했다. 하지만 영국에서 랭커스터 가문과 요크 가문 사이에서 왕위를 둘러싼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각 가문의 문장이 장미인 데서 이름 붙여진 이 30년간의 장미 전쟁으로 영국은 혼란에 휩싸였다. 프랑스의 샤를 7세는 이를 틈타 1453년 영국군 최대 거점인 보르도를 점령했고 이후 프랑스 내의 모든 영토를 회복했다. 프랑스의 애국 영웅으로 칭송받는 잔 다르크가 활약한 시기가 바로 이때이다.
백년 전쟁으로 형성된 영국과 프랑스 양국 간의 국민 의식은 서로를 숙적 관계로 만들어 버렸다. 이러한 관계는 국가 간 자존심 대결로까지 이어 져 영국과 프랑스는 세계 곳곳에서 충돌하고 대립했다.
이들이 처음 손을 잡은 것은 1853년 크림 전쟁에서였다. 러시아의 남진 정책을 견제해야했던 두 나라는 러시아와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서 오스만 제국을 지워 하는 데 힘을 모았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정략적인 화해였을 뿐이었다. 두 나라의 불편한 관계는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유럽연합에서도 두 나라는 서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자존심 대결을 벌이고 있다.
프랑크 왕국에서 탄생한 유럽 3국 -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의 국명은 게르만족의 일파인 프랑크족이 서유럽에 세운 프랑크 왕국에서 유래한다. 라인 강 중류 부근에서 발흥한 프랑크족의 클로비스는 부족을 단합하여 피레네 산맥에서 엘베 강에 이르는 서유럽 대부분을 포함하는 대제국을 건설함으로써 유럽의 정치 · 문화적 통일을 실현하였다.
이후 로마 가톨릭교로 개종하여 교황과의 우호 관계를 돈독히 하며 통일 국가 체제를 갖춰 나갔다. 그러나 클로비스가 죽은 후 왕국은 분할 상속제와 베르덩 조약, 메르센 조약에 의해 서프랑크 왕국(현 프랑스), 동프랑크 왕국(현 독일), 중프랑크 왕국(현 이탈리아)으로 분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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