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대의 섬 그린란드
덴마크는 장난감 레고와 안데르센 동화로 유명한 나라로, 북해로 돌출한 유틀란트 반도에 있다. 덴마크라는 국명은 북게르만족의 일파인 데인족에서 기원한다. 국토 면적은 약 4만 3,000 제곱킬로미터로 작은 왕국에 불과 하지만 본국보다 50배나 더 큰 세계 최대의 섬 그린란드를 영유하고 있다. 면적 216만 6,086제곱킬로미터 의 그린란드는 전체 면적의 5분의 4가 빙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빙상의 평균 두께는 1,500m~2,000m에 이른다.
그린란드에는 피오르가 발달해 있어 해안선 전체의 길이는 지구 적도둘레와 맞먹는 약 4만km로 추정된다.
그린란드에 처음 이주한 사람들은 황인종계의 이누이트였다. 이들을 부르는 에스키모라는 명칭은 캐나다 인디언이 ‘날고기를 먹는 인간’이라는 뜻으로 붙인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인간'이라는 뜻의 ‘이누이트'로 부른다. 이들은 기원전 3000년경 아시아의 북동부를 통해서 그린란드로 들어왔다.
그리고 바이킹이라 불리는 노르만족은 900년경 최초로 아이슬란드로 건너가 현재 아이슬란드의 수도인 레이캬비크에 정착하여 식민지를 건설했다.
그린란드 이름의 유래
980년경 악명이 자자했던 토르발드는 살인죄를 짓고 가족과 함께 노르웨이에서 아이슬란드로 쫓겨났다. 그에겐 에리크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에리크 또한 사람을 죽여 아이슬란드에서 추방당했다. 정착할 곳을 찾아 항해하던 에리크는 고향 노르웨이의 해안선과 비슷하며 풀과 나무가 무성한 섬에 도착했다. 그는 그 땅이 초록의 아름다운 땅임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그 섬에 그린란드라는 이름을 붙였다. 10~11세기는 빙하가 물러간 시기여서 전 지구적으로 기후가 따뜻했기 때문에 에리크가 그린란드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전혀 근거 없는 것이 아니었다.
그린란드 역사
아이슬란드로 돌아온 에리크는 사람들에게 그린란드로 이주할 것을 권했다. 힘든 여정을 극복한 이주민 400~500명은 그린란드 남부와 동부에 개척지를 마련하고 정착했다. 그러나 14세기에 급작스런 빙하기가 도래하면서 기후가 나빠져 가축 사육과 농경이 어렵게 되자 인구가 급감했고 페스트도 전파되면서 많은 사람이 죽었다. 기후가 계속 나빠졌기 때문에 결국 15세기에 개척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다른 한편, 이누이트에 의해 몰살당했기 때문에 개척 이주민이 사라졌다는 주장도 있지만 아직까지 명확한 근거는 없다.
그린란드는 1261년부터 노르웨이의 지배를 받아 왔다. 그러나 노르웨이는 초기 정착지들이 사라진 뒤로부터는 그린란드를 개발하는 데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16세기 후반부터 고래잡이로 그린란드에 대한 관심이 다시 커지기 시작하자, 노르웨이는 선교사를 파견하고 무역 회관을 건립하면서 그린란드에 대한 본격적인 식민지 개발에 나섰다. 1815년에는 노르웨이를 덴마크가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덴마크는 그린란드를 자국의 식민지로 삼았다. 1979년에 그린란드는 자치권을 획득했으나 공식적으로 덴마크 보호령으로 남아 있다.
천연자원으로 주목 받는 땅
그린란드는 면적에 비해 매우 적은 5만 7,000명이 살고 있으며 국토전역이 얼음으로 덮여 있어 경제적 토대가 취약하다. 그러나 최근 지구 온난화로 인하여 얼음이 빠르게 녹고 있어 그간 꿈꾸어 왔던 덴마크로부터의 분리 독립의 꿈이 무르익고 있다. 국토를 덮은 얼음이 빠르게 녹아 천연자원의 개발이 용이해지자 매장된 천연자원의 경제적 가치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11월 덴마크로부터 독립을 묻는 주민 투표 실시 결과, 75%가 독립을 찬성하여 자치권이 대폭 확대되었다.
'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축통화의 역사와 현재 달러에서 위안화까지 (3) | 2024.11.11 |
---|---|
레바논이 종교박물관 국가가 된 이유 (0) | 2022.03.21 |
이집트의 '죽음의 땅'이 생겨난 이유 (0) | 2022.03.21 |
식민지배의 아픈 역사를 가진 나라 나미비아 (0) | 2022.03.08 |
헝가리가 동유럽 국가들과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이유 (0) | 2022.03.08 |